멍멍이의 친구 (방구석 소설쓰기 EP.1)
사람들은 나를 '멍멍이'라고 부른다. 어떤 의도가 있어서 냄새를 잘 맡는 것도 아니고, 일부러 정을 주는 것도 아니다. 태어나보니 '멍멍이'였고, 난 내 스타일로 지낼 뿐이다.
나는 풀밭을 좋아한다. 혼자 거닐다 보면 여러 풀들을 만났고 그들과 친구가 되었다.
처음 만난 친구는 예쁜 꽃이었다. 빛깔이 고와서 보고있으면 한동안 멍해지기도 했다. 주위를 서성이며 꼬리를 치고 몸을 비볐다. 그렇게 우리는 친구가 되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꽃은 나를 향해 있었고, 나는 온 몸에 꽃 냄새를 묻혔다. 우리 둘의 향기가 비슷해져갈 무렵, 갑자기 눈에서 눈물이 났다. 멀리서 볼 때는 몰랐던 꽃가루가, 가까이 있는 내게 느껴졌다. 몸을 비비면 비빌수록 꽃가루가 심하게 날렸고, 눈물을 흘리고 기침을 했다. 즐거웠던 놀이가 더는 즐겁지 않게 되었다. 나는 그렇게 꽃을 지나치기로 마음먹었다.
이번에는 갈대를 만났다. 향기도 빛깔도 진하지 않았고, 그 모습이 좋았다. 갈대숲을 여기저기 뛰어다니는 내 모습을 갈대도 좋아했다. 그렇게 우리 둘의 '갈대놀이'가 익숙해질 무렵, 발바닥에서 피가 났다. 알고보니 갈대의 주변은 항상 마른 껍질이 늘어져 있었고 매우 억셌다. 시간이 지날수록 발바닥은 더욱 아팠다. 그러나 갈대는 마른 껍질을 정리할 수 없다고 했다. 싫으면 '갈대놀이'를 그만두라고도 했다. 발바닥의 아픔보다 갈대의 말이 더 아팠다. 나는 한껏 슬퍼하며 피비릿내 나는 '갈대놀이'를 그만 두었다.
더 이상 풀들과 친구가 될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에 꽤 오랫동안 풀밭을 지나쳤다.
어디쯤이었을까. 전혀 기대하지 않은 곳에서 선인장을 만났다. 여느 풀들과는 다른 동그란 모양이 좋았다. 그 신선함에 이끌려 한동안 주위를 서성였다. 선인장은 말이 없었고, 몇 마디 안되는 말은 늘 아리송했다. 운명이었을까, 신선하고 아리송한 선인장과 얼마 지나지 않아 친구가 되었다.
같이 지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나는 선인장과 같은 냄새를 풍기고 싶었다. 그러나, 꽃도 잎도 없는 선인장은 냄새를 쉽게 풍기지 않았다. 용기를 내어 냄새를 맡으러 다가갔고 깜짝 놀랐다. 선인장은 눈에 보이지 않는 수많은 가시가 있었다. 찔리면 아플 것 같았지만, 용기를 내어 가시에 찔리며 몸을 비볐다.
같이 노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온몸에 가시가 박혀 고통스러웠다. 가시가 고통스러울수록 선인장이 없는 삶은 상상하기 어려워졌다. 선인장은 내게 더 이상의 가시는 없다고 말하지만, 계속해서 가시가 돋아났다. 그의 가시는 너무 아팠고, 가시에 찔린 내 모습을 보는 선인장은 슬퍼했다. 나는 가시에 찔린 아픔보다 선인장의 슬픔을 먼저 생각했다.
나는 꽃가루와 갈대숲의 아픔을 지나, 이제는 가시의 아픔을 겪는다. 이 아픔이 가라앉으면 선인장과 친구가 되어 있을까, 다시 풀밭을 거닐고 있을까. 가시에 찔린 상처를 핥으며 지난 기억을 되돌아본다.